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다.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다.

직장인 A씨는 최근 야근을 하던 중 얼음을 씹어 먹다 화들짝 놀랐다.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구냐”며 큰 소리로 면박을 주는 상사 탓이었다. 이 상사는 평소 A씨의 컴퓨터 타이핑 소리나 얼음을 씹어 먹는 소리만 들려도 마치 그가 죽을죄를 진 것처럼 몰아붙였다.

은행원 B씨는 지난주 점심식사 후 급체로 고생했다. 점심시간 직전에 상사가 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말을 한 탓이다. 이 상사는 점심식사 시간에 함께 나가던 중 B씨의 치마를 보며 “그 치마는 또 어디서 샀냐?”고 빈정거렸다. 높은 억양으로 옷차림이 이상하다는 투로 외양을 지적한 것이다. 이 상사는 주기적으로 B씨의 외양과 옷차림을 지적해왔다.

7월 16일부터는 이런 일이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이날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의 폭행, 중견 기업 대표의 직원 폭행, 간호사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등 사회적 이슈가 반복해서 불거지면서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통과됐다. 6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이달 16일부터 시행된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라 괴롭힘이 사실로 드러나면 회사는 피해자가 요청하는 근무지 변경, 유급휴가 등을 제공해야 한다. 가해자에게는 징계, 근무장소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약 회사 오너가 괴롭힘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근로기준법 개정안 제109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 모든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규정을 취업규칙에 반영해야 한다. 법 시행에 맞춰 정부가 소개한 괴롭힘 인정 사례(위법 사례)를 중심으로 회사 또는 경영진, 관리자 입장에서 주의해야 할 점과 앞으로의 전망을 소개한다.

가장 관심이 모아지는 부분은 대체 어느 수준까지를 괴롭힘으로 판단해 처벌할 것인지 여부다. 사례를 통해 이를 알아봤다. 육아휴직 후 복직한 은행원 C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복직 전에 담당하던 업무는 창구에서 예·적금을 수신하는 일이었는데 복직해보니 창구 안내와 총무 보조업무만을 하도록 한 것이다. 지점 내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회의에도 C씨는 참여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이 은행의 임원이 C씨를 내쫓기 위해 집단적으로 따돌리라고 직접 지시한 것이었다. C씨는 우울증을 앓다 결국 퇴사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위법성을 명확하게 판별하기 위해선 △행위자(가해자) △피해자 △행위장소 △행위요건이 필요하다. 이 사례에서 행위자는 임원이고, 피해자는 C씨다. 행위장소는 은행(사업장) 내다.

핵심은 행위요건으로 총 3가지다. 반드시 이를 모두 충족해야 위법성이 인정된다. 우선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 이용 여부’가 확인돼야 한다. 사례에서 은행 임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다른 직원들에게 따돌림을 지시한 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는지 여부’가 확인돼야 한다. 사례에서 육아휴직 후 복귀한 직원에게는 휴직 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 하는 의무(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 제4항)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했다. 또 육아휴직 후 복귀한 직원을 상대로 다른 직원들에게 따돌림을 지시한 행위는 사회통념상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것이다.

끝으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로환경을 악화시켰는지 여부’가 확인돼야 한다. C씨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결국 퇴사했기 때문에 위법성이 인정된다.

반대로 불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의류회사에 다니는 디자이너 D씨는 하계 신상품 발표회를 앞두고 팀장에서 시안을 보고했다. 하지만 팀장은 “이번 시즌 신제품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이런 보완 요구가 수차례 반복되면서 D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 경우 행위자는 팀장, 피해자는 D씨, 행위장소는 사업장 내다. 그러나 행위요건 중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는지 여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신제품의 디자인 향상을 위해 부서원에 대해 업무 독려 및 평가, 지시를 수차례 실시하는 정도의 행위는 업무상 필요성이 있고, 사회통념상 적당하지 않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팀장은 회사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담당자로서 신제품 발표회를 앞두고 성과 향상을 위해 부서원의 업무에 대해 독려 및 지시를 할 수 있는 업무상 권한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판단 기준 모호해 당분간 혼란 일 듯

다만 정부는 아직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담긴 매뉴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의 예시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6년에 만든 ‘국내 직장 괴롭힘의 실태 분석 및 대응방안’ 자료를 바탕으로 정했다고 소개하고 있는 정도다. 이 자료에 담긴 예시는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함’ 등으로 모호한 측면이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은 그 모습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행위 유형을 사전에 열거·규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2016년 9월 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초기처럼 다양하고 애매한 사례에 대해 일정 부분 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괴롭힘을 판단하는 기준에 모호한 부분이 있어 다툼의 소지가 있고, 법을 악용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대부분의 기업은 취업규칙 변경, 임직원 교육 등을 마치고 시행을 기다리고 있지만, 시행 이후 돌발 상황이나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에 대해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갑질감수성 지수’를 자체 개발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8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갑질감수성 지수’는 100점 만점 중 68.4점으로 갑질에 대해 둔감한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연차가 낮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비정규직 또는 여성인 경우에는 갑질감수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더 민감했다). 같은 직장 안에서도 각각이 처한 조건에 따라 갑질을 가르는 기준은 다 다르다는 뜻이다. 그만큼 법 시행 후 다양한 분쟁의 소지가 있는 셈이다.

김문관 차장,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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